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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약한 취미



나에겐 남들이 알면 조금은 혐오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를(그러나 나는 태연자약한) 악 버릇이자 취미가 있다.

바로. 먹고 남은 여분의 음식물, 주로 과일이나 채소 혹은 잘 썩지 않는 음식물들을.

방치. 하는 것이다. 


이게 고약한 버릇이란 걸 알게 된 건. 최근이다.

누군가 집에 먹지 않는 삶은 고구마가 5일이나 그대로 있다고 하길래.

"아무 생각없이 우리집엔 3주된거 있는데"라고 했는데. 모두가 뜨악한 눈으로.

그래서.

귤 하나도 책상에 한달 째 앉아 있고.

음식수납장에 서너개 남은 생감자들는 봉지를 뚫고 가지를 뻗치고 있으며(가지가 뻗어가는만큼 몸뚱이는 작아지는 걸로 자가영양분공급이 아닐까).

어제는 탁구공만하게 쭈글어들어 미니어쳐가 된 사과 하나(처음엔 주먹보다 조금 컸으나)를 결국 버렸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지만, 냉장고에 약 1년 반 정도? 된 달걀 두 알이 있.."

"으에에엑-" 

경악하는 그들에게. 다들 이런 거 하나쯤은 있지 않아라고 물었으나 허공에 메아리.

곧이어 쏟아지는 질문들.

뭐냐 뭐냐 뭐냐 어쩔시구 냐냐냐 블라블라. 아뵤.


왜 안버리냐 길래.

"그냥. 오래됐다고는 생각되는데. 버리지 않게 되네." 라고 답했다.


물론. 비위가 워낙에 안 좋은 까닭에. 금방 썩는 것들이나. 냄새가 나는 것들은 바로 버린다.
(냉장고 달걀 2알만 예외. 그러나 안에서 그들은 얌전하므로... 만지지 않는다.-_-;;)

암튼. 그리하여.

나의 그런 버릇이나 취미가 조금은 별날지도. 그리고 살짝 고약하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얘기를 들은 여러 사람들이 뜨악하며 살짝 뒤로 물러섰으므로.)


그런데 이게. 해보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꽤 재미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귤은. 오래 상온에 두면. 안의 열매?!가 조금씩 말라들어가 나중에 껍질만 남게 된다!
물론 어떤 귤들은 바로 썩어버리는 경우도 있어 버려야한다.



암튼.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봄맞이 대청소를 하면서.

가장 오래된. 달걀 두알을 청산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앞으로는 그 결과를 기록해놓기로.

전에 내 얘기를 들은 누군가 중 단 한명이 흥미로워하는 모습에서. 

기록해놓으면 재미있겠다는 영감을 받았기 때문. 






달걀은 껍질이 단단해서인지. 약 1년 반이 지났음에도. 외형상으로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고무장잡을 착용하고 놈을 꺼내 안을 확인해봤다. 매우 긴장.

독가스 대비하여 마스크착용.

사실. 가장 큰 두려움은 병아리가 뛰어 나올지도 모른다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로 시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였다.

반은 깨끗하게 비워졌고 한쪽으로 마치 로얄젤리처럼 응축된 상태.


하지만 의미있는 일이다.

나의 취미이자 버릇인 '방치해두기'에대한 기록이.

가장 오랜 기간동안 방치됐던 달걀 두알을 시작으로.

앞으로 계속될 것이므로. -_-


1년 반 된 달걀가스에의 노출이 생명에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