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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라 하기에는

복싱 3년차가 말하는 복싱 지금은 몸 여기저기가 조금 고장나서 쉬고 있지만, 나는 복싱 3년차다. 복싱은 상당히 과격한 운동이다. 링 위에서 상대를 쓰러트려야하는 격투기다. 때문에 복싱을 오래, 애정하며 하다보면 몸 여기저기에 적신호가 온다. 허리, 무릎, 어깨 관절에 이상이 오고 늘 근육통에 시달린다. 그것이 복싱이다. 요즘에 복싱을 생활체육으로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시작은 그랬다. 언론에서 다이어트에 좋다며 복싱을 소개하기도 하고, 실제로 많은 복싱체육관에서는 생존을 위해 또 복싱의 새로운 돌파구를 위해 생활체육으로서의 복싱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적당한 이슈가 되었고,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체육관을 찾고 있다. 내가 다니는 대성체육관은 홍대에 있다. 홍대라는 특수한 지역에 있으면서도 우리 체육관에는 나름 예전 방식을.. 더보기
사과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어두운 골목. 차가운 백열등 걸린 1톤 트럭 한가득 사과다. 지저분한 모자 아래 희끗한 머리. 두꺼운 항공잠바 움츠리고 쭈그려 앉아. 남자 사과를 씹고있다. 눈을 내리깔고. 느리게. 으적. 으적. 내 품의 봄이. 부끄러워 달아났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더보기
고약한 취미 나에겐 남들이 알면 조금은 혐오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를(그러나 나는 태연자약한) 악 버릇이자 취미가 있다. 바로. 먹고 남은 여분의 음식물, 주로 과일이나 채소 혹은 잘 썩지 않는 음식물들을. 방치. 하는 것이다. 이게 고약한 버릇이란 걸 알게 된 건. 최근이다. 누군가 집에 먹지 않는 삶은 고구마가 5일이나 그대로 있다고 하길래. "아무 생각없이 우리집엔 3주된거 있는데"라고 했는데. 모두가 뜨악한 눈으로. 그래서. 귤 하나도 책상에 한달 째 앉아 있고. 음식수납장에 서너개 남은 생감자들는 봉지를 뚫고 가지를 뻗치고 있으며(가지가 뻗어가는만큼 몸뚱이는 작아지는 걸로 자가영양분공급이 아닐까). 어제는 탁구공만하게 쭈글어들어 미니어쳐가 된 사과 하나(처음엔 주먹보다 조금 컸으나)를 결국 버렸다고. 그리고 마.. 더보기
조잡한 인생설 혼자 가는 거다. 옆에 같이 걷고 있던 사람이 조금씩 벌어져. 그래서 먼지보다 작아져 보이지 않아도 떼쓰지 않고 싶다. 갑자기 누군가 등에 달라붙어도. 밀어내지 않고 싶다. 내가 처음 두려움에 떨며 젖은 땅에 발을 내딛었을 때. 그 사람이 옆에 있었던가. 결국에는 내가 다시 흙으로 고꾸라질 때도. 그가 뒤에 붙어 있을까. 과거가 미래로 가는 어떤 대열에 나는 떨어졌을 뿐. 미래가 과거가 되어. 모든게 다시 희미해질 때까지 단지. 겹치고 엇갈리고 나란히 섰다 붙었다 갈라지고 엉켰다 풀어질 뿐. 아닌가. 더보기
엇갈려 달린다 밉게 녹은 눈 사이로. 선로가 누워있다. 그위로 전철이 포개지고. 사람들은 밖을 보지 않는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더보기
빈털털이 인생 원래 가진게 없는 사람은. 뭐 작은거 하나라도 주머니에 들어 있으면.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고. 하루종일 불안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무엇보다 걱정하는 건. 주머니에 든 그것이 내 것처럼 여겨지진 않을까. 하는 거다. 왜냐하면 태생에 주어진게 없는 우리 같은 족속들은. 한번. 내 것이라 생각하면. 절대. 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머리를 흔들며. 아니라고. 털어 내는 버릇이 있다. 더보기
기대하지 않으면 되는건데 기대하지 않는다. 차갑고 인간적이지 않아 보이겠지만. 그런 감정 소모. 지쳐버려 싫어. 어떤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려 노력하고 있다. 비록 차갑고 매끄러운 인간이 될지라도. 어쩔 수 없다. 더보기
은행가기 프랭클린다이어리를 보기만 해도 멀미가 날 정도로 무질서한 인생을 사는 나로서도 그저 흘러버린 시간이 아까워 불편함을 느끼는 곳이 있다. 관공서. 은행. 그 곳들은 아무리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가도 가깟으로 일이 처리되는 신기한 곳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멍하니 앉아 모니터를 보거나, 앞에 앉은 대머리 할아버지의 벗겨진 부분의 면적을 계산하는데 소모한다. 오늘도 난. 영업 종료가 다 되어가는 4시가 되어서야 데스크앞에 앉았다. 하지만 인상 좋은 직원 아저씨는 내 카드의 오류를 처리해주지 못했다. 다만 자신은 카드업무를 할 줄 모르며, 카드담당이 몸살감기에 걸려 월차를 냈고, 게다가 오늘따라 사람이 몰려 다른 직원도 바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일 다시 오시면 번호표 없이 바로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인상.. 더보기
오늘도 다치게 하다 나로 인해 누군가 상처 받는게 싫다. 나의 선택. 결단. 나의 실수. 오해. 나의 무지. 부족. 나의 오만. 자만. 때문이 아닐까.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한다. 부질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상처주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사랑만 아니라 숨 쉬는게 그렇다. 내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좌절하지 않겠다. 상처를 주며 태어났고 살아가지만 더 큰 희망을 이야기 할테다. 오늘도 한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나만 생각했다. 내 결정이 더 큰 희망을 피워낼 수 있기를. 잊지 않겠다. 오늘 내가 준 상처. 나의 영화. 더보기
여름, 정동진 독립영화제 원래 스쿠터 타고 가려 했지만, 동네절친과의 즉흥여행이 된 정동진독립영화제. 야외영화제라, 태풍으로 인한 비의 공습예보로 걱정 했는데. 일기엄포 때문에 사람들이 덜 온 때문인지 최성수기에도 정동진은 썰렁했다. 싼 민박에, 한가한 바닷가. 우리는 태풍의 수혜자가 됐다. 별빛 쏟아지는 밤은 아니었어도 사방이 산으로 병풍처진 초등학교 운동장에 돗자리깔고 모기장 치고 앉아 맥주 마시며 영화를 보니 주위가 온통 자유와 낭만이라.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영화를 보고, 감독들 앞에 나와 인터뷰하는데, 생각들이 머리를 두드리고. 영화에 대한. 그리고 나에 대한. 대화를 요구했다. 낮에는 정동진 아래로 심곡항 맑은 물에 발 담그고, 망상해수욕장에서 사람구경도 하고, 묵호항 들러 회도 먹고. 방파제에 앉아 언제까지고 원.. 더보기
정리가 찾아 온 날 흐리멍텅하던 머리 속이 어느 순간 갑자기 정리될 때가 있다. 이런 순간은 예고없다. 오늘 아침 나는 두더지님 방바닥에서 달아나버린 잠의 흔적을 구차하게 부여잡고 누워 있었다. 이불 속에서 바로 앞에 놓인 검은 페인트 아래 나무결이 드러나는 TV 다이를 그저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뒤척이며 돌렸을 때 맞은 편 벽에서 틈을 비집고 들어온 작은 햇살 조각을 발견하곤 '아 다 정리됐구나'고 혼자 중얼거렸다. 가슴은 가벼웠고 머리 속은 깔끔했다. 길지 않은, 짧지 않은 동면이었다. 거리의 차 소리들은 매번 빛을 실어 내가 누워있는 창문 너머로 따뜻함을 넘겼다. 황금빛 따뜻함이 벽에서 천장으로 번지면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일어나 창가로 갔다. 블라인드를 타고 넘실거리는 빛 때문에 마치 거리는 한여름 .. 더보기
내 안에 나이테 나무가 잘려나가는 것을 봤다. 두꺼운 껍데기 안 잘려진 살 위로 동글 동글 세월의 흔적이 드러났다. 나무도 나이를 먹는다는 걸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사람처럼 나무도 나이를 먹는다. 매 순간 살기 위해 숨 쉬고, 마시며, 종족을 번식한다. 그냥 모두 같은 동그란 띠처럼 보이지만 나이테는 나무가 살아온 삶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굵고 가는, 곧고 휘어진 나이테에는 나무가 겪었던 순간순간이 모두 기록되어있다. 좋고 즐거운 순간만이 아니라 슬프고 절망스러운 순간도 빠짐없이 들어있다. 그 것이 견디기 힘들었던 고통의 순간이었다할지라도 삶이라는 큰 여정의 나이테에서는 모두 의미있기 때문이다. 나무처럼 나이를 먹는 사람에게도 나이테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매일 의미 없다고 스쳐 보내는 시간의 흔적도 나무의 .. 더보기
요플레, 유통기한 그리고 프랑스 사람 요플레와 같은 유제품을 유통기한 안에 다 먹기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걸 먹는 건. 아마도 처음 사왔을 때, 그리고 유통기한이 지나고. 심심해서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요플레 두 개가 눈에 들어 온다. 하나를 꺼냈다. 유통기한이 며칠 지났다. 이정도 쯤이야. 뚜껑을 벗긴다. 냄새를 맡는다. 괜찮다. 숟가락을 들고 떠 먹는다. 맛도 그대로다. 오히려 더 맛있게 느껴진다. 독이 든 버섯이나 부패한 치즈도 과감히 먹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갈망이 남다르다는 프랑스 사람이 떠올랐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별미는 위험한 음식인 경우가 많다는 데. 일본에서는 복어 사시미를 먹다가 독 때문에 죽는 사람이 종종 있다는데. 입술이 얼얼할 정도의 복어사시미에서 최고의 미각을 경험한다는데. 죽음의 경계선에서 감각은 거부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