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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가 찾아 온 날



흐리멍텅하던 머리 속이 어느 순간 갑자기 정리될 때가 있다.
이런 순간은 예고없다.

오늘 아침 나는 두더지님 방바닥에서 달아나버린 잠의 흔적을
구차하게 부여잡고 누워 있었다.

이불 속에서 바로 앞에 놓인 검은 페인트 아래 나무결이 드러나는 TV 다이를
그저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뒤척이며 돌렸을 때
맞은 편 벽에서 틈을 비집고 들어온 작은 햇살 조각을 발견하곤
'아 다 정리됐구나'고 혼자 중얼거렸다.

가슴은 가벼웠고 머리 속은 깔끔했다.
길지 않은, 짧지 않은 동면이었다.

거리의 차 소리들은 매번 빛을 실어 내가 누워있는 창문 너머로 따뜻함을 넘겼다.
황금빛 따뜻함이 벽에서 천장으로 번지면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일어나 창가로 갔다.
블라인드를 타고 넘실거리는 빛 때문에 마치 거리는 한여름 같았다.

거리 너머 건물들 사이로
햇살에 반짝이며 출렁이는 바다가 있겠지.

나는 더이상 복잡하지 않았다.

2008. 12.26.  Herr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