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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플레, 유통기한 그리고 프랑스 사람


요플레와 같은 유제품을 유통기한 안에 다 먹기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걸 먹는 건. 아마도 처음 사왔을 때, 그리고 유통기한이 지나고.

심심해서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요플레 두 개가 눈에 들어 온다.
하나를 꺼냈다. 유통기한이 며칠 지났다. 이정도 쯤이야.

뚜껑을 벗긴다. 냄새를 맡는다. 괜찮다.
숟가락을 들고 떠 먹는다. 맛도 그대로다. 오히려 더 맛있게 느껴진다.

독이 든 버섯이나 부패한 치즈도 과감히 먹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갈망이 남다르다는 프랑스 사람이 떠올랐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별미는 위험한 음식인 경우가 많다는 데.
일본에서는 복어 사시미를 먹다가 독 때문에 죽는 사람이 종종 있다는데. 
입술이 얼얼할 정도의 복어사시미에서 최고의 미각을 경험한다는데.

죽음의 경계선에서 감각은 거부할 수 없는 쾌락으로 변한다. 랄까.

까지. 생각이 미쳤다. 뭐.

나는 그냥 유통기한 지난 요플레를 먹는 한국 사람일 뿐이니까.
아무 상관 없잖아. 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느새 요플레를 다 먹었다. 
고구마를 먹었다.
한참이 지났다.

배가 살살 아파왔다. 
복통의 시작을 스스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또 잠깐 머리속에 프랑스 사람이 떠올랐다.

분석 시작 - 내가 먹은 것은 유통기한 지난 요플레와 고구마 - 분석 끝

이상하게도 유통기한 지난 요플레 보다 그날 오전에 찐 고구마가 더 의심스러웠다.
이상하게도 요플레는 믿음직스러웠다. 

다음 날 나는 전날 보다 유통기한이 하루 더 지난 하나 남은 요플레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꺼냈다. 요플레를 의심하지 않았다.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배가 아팠다. 한국인인 나는 끙끙거리며 유통기한이 지난 요플레가 문제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또 프랑스 사람.

하지만 다음에 또 냉장고에 유통기한 지난 요플레가 있다면, 나는 아마도 주저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별거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랄까.

그런데 대체 왜 난 프랑스 사람이 아닌걸까. 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