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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들을 내다버리다, 그리고 아버지




가게 오픈과 우기로 인해, 카오스 말기에 접어든 방 청소를 마쳤다. 

하다보니 가구이동과 책장정리까지 3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다.


마음이 상쾌하다. 청소도 청소지만,

3단책장 하나 가득찬 책들 하나도 남김없이 내다버렸다.

책이라기 보단. 
토익, 토플, 한국어능력시험, 한자능력시험, 정보처리기사, 컴활, 그리고 각종 상식과 전공수험서, 여러 스크랩과 출력물
등.등.등.등.

대학졸업즈음부터 졸업 후 몇년 간, 줄곧 잡고 살았던 그것들.
버리려고 하나씩 꺼내다보니, 나도 사회에서 말하는 꽤 스펙이 괜찮은 놈이다. 이젠 나이에서 먼저 걸러지겠지만. ㅋ

2년 전 지금 집으로 이사오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끙끙대며 고스란히 가져왔던 것들을.

왜 오늘 정리할 마음이 생겼을까.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버리고나니 마치 언제나 닿지 않는 저저 구석의 찌든 때까지 말끔히 씻어낸 기분이다.

시원하고 후련하다.


그리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오랜 시공간의 차이가 있지만,

나도 단 한명의 특기자를 뽑는 모 공기업 공채 최종면접에서 전 장관 손자에게 밀려 떨어졌었다.

나를 포함한 3명, 최종면접 당일임에도 뭐하는 회사인지 몰랐던 한 명이 합격자에 올랐다.

그는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세미정장을 입고, 면접 내내 횡설수설 했다.
면접을 보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고생했다 얼마나 준비하셨냐는 나의 물음에 "아빠가 한번 봐 보래서"라는 시큰둥한 대답이 돌아왔었다. 아마 다른 한 명이 합격했다면 깨끗이 물러났을 것이다.
 
인사과에 수차례 나의 불합격에 대한 이유를 요청했지만 거부됐다.

결국 당시 지방기초단체의원을 하고 있던 이모부의 인맥을 둘러둘러, 모 국회의원님을 통해 알게 된 전말은.
"상대가 너무 쎘다"였다. 전직이긴 하지만 장관의 손자라는 것. 재미있는 건, 다른 한명도 모 구의원의 조카.

2년을 도서관과 집만 왕복하며 준비했던 회사였다.

암튼 그리고 맞이한 그 해 추석.

술이 거나하게 취하신 아버지가 밤에 들어와서 자는 척하고 있는 내 옆에 누워 했던 말.

"애비가 못나 미안하다."


지금, 그 때 내가 그 곳에 붙었더라면 하고 돌아보면. 아찔하다.

비록 백수에 가까운 경제적 능력과 불안정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정확히 알고, 더디지만 나아가고 있다.


여전히 부모님은 걱정이 많으시지만, 

이해하실줄로 믿는다. 


언젠가 운이 잘 풀려 하는 일이 잘 된다면,

아버지가 했던 그 말을 다시 돌려 드리고 싶다.

'아버지 보세요. 못난 건 아버지가 아니라 세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