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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갈증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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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다시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건 어떤 의미일까.

"한번 더 봐야겠다.."

느닷없는 엔딩 크레딧을 망연히 바라보며 입에서 흘러 나온 말.

난 영화를 한번 더 보던지 아님 코맥 맥카시의 동명 원작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찾아 읽으려는 참이다. 혹시나 내가 놓친 실체에 대한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그런데 제목은 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일까.
 
이 물음은 벌써 미국에서 코엔 형제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그들의 대답은 "그건 원작을 쓴 작가에게 물어보라"

아마도 작가는 그건 독자에게 물어보라고 하지 않을까.. 내 생각이다.


코엔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매력은 바로 이런 "궁금증"이 아닐까.

뚜렷한 실체 없이 2시간 동안 사람을 홀려 놓고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그 무엇.
묘한 끌림.


제목에서 풍기는 의아함에서 시작한 물음표는
사막과 국경이라는 서사의 배경과 세명의 무뚝뚝한 남자를 통해 계속 증폭되어간다.

길지 않은 대사와는 대조적인 적지 않은 죽음.
많지 않은 표정과는 대비되는 얕지 않은 내면.

그리고 영화는 궁금증이 극에 달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엔딩 크레딧을 올려 버린다.

동시에 우린 느끼게 된다. 마치 목에서 먼지가 날 것 같은 심한 갈증을.

영화 초반에 "물.."을 애걸하던 멕시코인처럼..


혹시 나처럼 시커먼 엔딩 크레딧 뒤에서
안톤 쉬거의 야릇한 표정을 본 것 같은 착시현상을 겪은 사람? ㅋ

고 착시현상이 영화의 대사를 빌려 한 말은,

"쉬거처럼 영화도 나름대로의 어떤 규칙이 있는 것 같다.
 그게 어떤 규칙인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