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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켓 리스트 :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않게 하는 단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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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판 포스터. 제목은 "가장 좋은 것은 마지막에 온다"?


연기파 배우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의 출연만으로 영화 <버켓 리스트>는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연기와 실제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심으로 다가온다.

깊어지는 주름만큼 더욱 푸근함과 인자함의 향기가 짙어지는 모건 프리먼.
익살과 아이같은 심술으로 폭탄웃음을 자아내는 친구 같은 할아버지 잭 니콜슨.

두 사람의 버디 무비인 <버켓 리스트>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노인들이 죽음을 앞두고도 버켓 리스트를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사실 현실에서는 영화처럼 6개월 밖에 못 산다는 선고를 '이건희'와 같은 재벌과 같은 병실에서 그것도 바로 옆 침대에서 듣는 건 불가능하다. 혹 그런 일이 일어난 다고 해서 '이건희'가 콜이 카터에게 그랬던 것처럼 죽음이라는 같은 배를 탔다는 순진한 이유로 돈을 펑펑 써줄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현실과 같지 않다는 것 쯤은 이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건 그 속에 담겨진 의미다.

기존의 다른 영화들이 죽음의 어두운 면을 보여줬다면,

<버켓 리스트>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꼭 해보고 싶은 일"의 목록을 적고 그 것을 이뤄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죽음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냐고 묻는다.

고작 6개월 동안 어떤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겠냐고 반문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화 속 카터와 콜의 경우에 6개월은 그들 전체 인생을 마무리 짓는데 큰 의미를 가지게 됐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영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발짝 더 나아가,
관객들에게 "나의 버켓 리스트는 무엇인가?" 스스로 묻게 만든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잘 가고는 있는 건지,

혹 영화 속 두 주인공처럼 죽음을 눈 앞에 두고서야 진짜 '버켓 리스트'를 쓰게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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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제시하는 또 하나는 의미는 "친구"다.

개인적으로는 "버켓 리스트"와 삶의 의미를 돌아보자는 교훈적인? 암시보다는

전혀 다른 배경과 삶을 살아온 카터와 콜이 짧은 만남에도 불구하고 깊은 우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더 흥미로웠다. -비록 영화라는 환상의 공간에서지만ㅡ_ㅡ;; -

생각해 보면 수십년을 함께 한 오래된 친구보다 잠깐 몇 마디를 나눴을 뿐인데 더 깊은 신뢰와 친근감이 느껴지는 친구를 만난 경험이 나 역시 있다.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하지만 설레이는 기쁨의 어떤 것이었다.

인간에게 친구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친구는 피로 맺어진 가족과 사랑으로 관계되는 연인 혹은 배우자와는 다른 독톡한 관계다.
때로는 피도 못 채워주는 부분을 채우기도 하고 사랑보다 더 숭배되기도 한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탈리아 남자들은 인생에서 사랑보다 우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마도;-

그리고 많은 경우 '진실된' 사랑이 '일시적'인 반면에 '진실된' 우정은 '영원'하다.

어.. 나의 경우에는....이라고 해두는 게 낫겠다. ㅎ

어쨌든 이 삭막한 세상에 "친구"라는 단어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렇지 아니 한가...요? ^^


[Flash]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NFPlayer.swf?vid=D792BDE93A9B243217DA3C24F0448716BCB1&outKey=3a1e8fd220d329497eb6d71666655ffb0f8162bfa82ef3d3a13e0ff5270599d0b99689dd50aee001bff2873af1815798



<버켓 리스트>
친구만의 '느낌'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강추
친구만의 '느낌'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강추
머스탱 마니아에게도 강추
(나는 미국사람도 아닌데 왜 머스탱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을까 ㅡ_ㅡㅋ)